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카모리 아키나 (문단 편집) === 다양한 시도, 그러나... (1990년대 중후반) === 1992년 서포트 부족 등의 이유로 소속사 임원들과 갈등이 지속되어 계약을 해지하고 새로운 개인 기획사 'Continue'를 설립하였다. 또한 그간 음반 제작이나 이미지 컨셉트 등의 문제로 의견 충돌이 생겨 데뷔 때부터 함께한 레이블 [[워너 뮤직 그룹|워너 파이오니아]]와의 계약을 해지하였고 92년 한 해 동안 음반사가 없어 일체의 음악 활동 없이 배우로써 외도 기간을 가지며 드라마 <[[솔직한 그대로]]>의 속 여린 양아치인 츠키시마 칸나역으로 주연을 맡아 배우로써도 상당한 성과를 냈다.[* 최종회 시청률 31.9%를 기록] 그 후 음반사 MCA빅터와 계약을 체결하였는데, 음반사를 이적하는 과정에서 아키나가 몰랐던 이중 계약 관련 이슈가 있었고 레이블 이적료의 분배 문제로 인하여 소속사와 법적 공방을 벌이며 또(...) 소속사를 이적하였다. 1993년 법적 공방을 마무리하고 싱글과 앨범을 발매하지만 긴 공백기 이후로 새롭게 재편된 헤이세이 시대의 음악계에서 아키나의 신곡은 이전과 같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레이블 이적 후 바로 발매된 싱글 [[Everlasting Love/NOT CRAZY TO ME]] 부터 음악적 성향이 판이하게 달라져 판매량과 순위가 현저히 줄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r-Kkrz3-TEE, height=240)]}}}|| || '''90년대 대표곡 <[[片想い/愛撫|{{{#fff 愛撫(애무)}}}]]>''' || 그러나 싱글 발매 후 4개월만에 정규 앨범 [[UNBALANCE+BALANCE]]를 발매하는데, 당시 최전성기를 달리던 [[코무로 테츠야]]의 프로듀스를 받아 제작된 곡 [[片想い/愛撫|애무]]가 앨범 수록곡임에도 불구하고 유선 차트 3위까지 올라가는 기염을 토하며 히트하여 1994년, 뒤늦게 이 곡을 싱글컷하여 활동을 이어나간다. 이후 [[닛폰 테레비]] 마감 뉴스와 타이업하여 싱글 [[夜のどこかで 〜night shift〜|이 밤 어딘가에서]]를 발매해 활동했고, 2개월만에 싱글 [[月華|월화]]를 발매해서 오리콘 8위에 진입하는 성과를 냈다. 이어 1995년 정규 앨범 [[la alteración]] 의 선행 싱글로써 [[原始、女は太陽だった|태초에, 여자는 태양이었다]]를 발매하는데, 이 싱글 발매 직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 한 것은 물론 활동중 가족들과의 감정적 문제, 분쟁이 극에 치달아 아예 가족들과 절연. 이후 본명이 아닌 'AKINA' 라는 명의로 싱글 [[Tokyo Rose]]를 발매하였으나 3만장 판매로 노선 변경에 실패하여 이듬해 다시 나카모리 아키나로 돌아와 또 한 번 [[코무로 테츠야]]와 손을 잡고 [[MOONLIGHT SHADOW-月に吠えろ]]를 발매하였다. 코무로 붐의 인기 속에서 TK 프로듀스라는 것을 강조해 홍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적은 14위^^(약 10만장)^^ 으로 당시 아키나의 판매량에서 크게 상승하지 못한 수치를 보여주었다.[* 당시 한 주간지에서는 코무로를 붙여줘도 회생불가라는 식으로 [[http://wagamamakorin.client.jp/moonlight.html|비아냥대기도 했다]].--리컷인데 13만 장을 찍은 애무는 성공한 걸 까먹었나보다--] 98년 MCA빅터를 나와 소규모 음반사 가우스 엔터테인먼트로 이적하였다. 아키나 본인이 주연으로 출연한 드라마 <차가운 달>의 OST로 쓰인 [[帰省 〜Never Forget〜]]이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판매량은 9만 4천장 정도] 이듬해에도 드라마 <보더 -범죄심리수사관 파일>의 주연으로 출연해 주제가 [[オフェリア|오필리아]]를 부르며 배우와 가수 양쪽으로 활발히 활동하려 했으나 독감과 동시에 골절 사고까지 겪어 드라마가 조기 종영되었다. 또한, 당해에 레이블과 팬클럽 측이 협업하여 생일 기념 콘서트를 개최할 예정이었지만 이는 아키나에게는 전혀 고지되지 않은 일이었고 레이블과의 갈등이 심화되어 생일 축하 콘서트는 중지되었으며 팬클럽 회장이 티켓 비용을 [[먹튀]]하는 바람에 아키나의 사비로 팬들에게 2400만엔 가량을 배상하는 등 여러가지 크고 작은 일들이 겹쳐 암흑기의 절정을 찍게 된다. 심지어 이런 불화 과정 속에서도 소속사에서는 제대로 뽕을 뽑으려 작정했는지 아키나가 녹음하다 손 뗀 여러 곡을 합쳐 만든 앨범이자 어떠한 동의도 없이 발매되어 아키나 본인도 자신의 앨범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앨범 [[will(나카모리 아키나)|will]]을 발매했고, 이 앨범을 홍보하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가우스 엔터테인먼트의 사장은 '나카모리는 이 업계에 있어서는 안 되는 가수'라며 아키나를 격하게 비난하는 등 파국을 맞았다. 결국 가우스와는 완전히 절연하여 2002년까지 레이블이 없는 상황이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